[길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

황수정 기자
수정 2025-07-28 12:01
입력 2025-07-28 00:21

여섯 살쯤인 여자아이가 자전거 페달을 갑자기 멈추고는 소리친다. “와, 아빠. 하늘 너무 이쁘지 않아?”
그 말에 저녁이 반짝거린다. “와, 이쁘네.” 아이와 똑같은 높이와 길이의 감탄사로 아빠도 하늘을 올려본다.
나도 보았다. 우련히 붉어 가는 하늘 한 번, 하늘빛에 물든 아이 얼굴 한 번.
나는 알겠다. 삶의 경이는 도처에 있다는 것. 터벅터벅 모퉁이를 돌다 보면 문득 와서 이마에 부딪힌다는 것, 여섯 살 아이가 저녁 하늘을 노래하다니. 노을 아래 그 조그만 발걸음을 멈추다니.
해가 순하게 내려앉는 저녁이면 나는 순해진다. 순한 풍경들이 순한 사람이 되게 한다. 학원차에서 내려 두 팔 활짝 벌린 엄마를 향해 달려가는 저 아이. 엄마 말고는 우주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날고 있는 십 초쯤. 저보다 아름다운 속도를 본 적이 없다.
먼 나라의 시인은 말했지.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고. 이 순간 나도 알 것 같다. 수수억년 밤하늘의 기적보다 풀숲의 하루가 먼저 아름답다는 것.
풀숲이 먼데 풀벌레가 운다. 가을은 먼데 어쩐지 크게 운다.
황수정 논설실장
2025-07-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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