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상업 미술의 장벽 파괴… 대중문화 시대 ‘예술 기업가’ 탄생[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수정 2025-07-28 01:00
입력 2025-07-28 00:21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
“훌륭한 사업이 최고의 예술”
출세를 꿈꾼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
대중 욕망하는 달러를 미술 중심에
미술계 위선 폭로, 작품 팔아 대성공
“난 기계가 되고 싶다, 당신은?”
‘작품은 1점뿐’이라는 원본성 파괴
대중이 향유하도록 대량생산 실현
‘창작=산업 제조’로 본 혁명적 발상
“누구나 15분간 유명해질 것”
‘먼로’로 명성의 생산·소비·소멸 구현
대중문화 도래 예견하고 흐름 선도
예술가를 ‘대중이 꾸며낸 허상’ 정의
출세를 꿈꾼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
대중 욕망하는 달러를 미술 중심에
미술계 위선 폭로, 작품 팔아 대성공
“난 기계가 되고 싶다, 당신은?”
‘작품은 1점뿐’이라는 원본성 파괴
대중이 향유하도록 대량생산 실현
‘창작=산업 제조’로 본 혁명적 발상
“누구나 15분간 유명해질 것”
‘먼로’로 명성의 생산·소비·소멸 구현
대중문화 도래 예견하고 흐름 선도
예술가를 ‘대중이 꾸며낸 허상’ 정의

오랫동안 미술계에서 상업적 예술가라는 꼬리표는 가장 피해야 하는 단어였다.
예술가는 돈을 멀리하고 순수하게 창작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낭만적 신화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1928~1987)은 오래된 금기를 깨뜨렸다.
그에게 미술로 돈을 벌고 유명해지는 일은 또 다른 형태의 창작 행위였다. 그는 미술을 대중이 쉽게 소비하고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전환시키고 순수미술과 상업미술 사이의 견고한 벽을 허물었다. 그런데도 워홀은 현대미술의 개념을 바꾼 위대한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돈과 명성을 좇았던 그가 어떻게 미술사의 중심에 설 수 있었을까. 그의 일기와 편지, 인터뷰, 기록물을 통해 앤디 워홀이라는 이름이 최고급 브랜드이자 동시대의 문화 현상으로 확장돼 간 놀라운 여정을 따라가 보자.
첫 번째 명언 “사업을 잘하는 것은 가장 매혹적인 종류의 예술이다. 돈을 버는 것은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훌륭한 사업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이 도발적인 문장은 현대미술의 역사를 바꾼 혁명적 선언이었다. 언뜻 보면 돈을 많이 버는 예술이 최고라는 의미로 다가오지만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워홀은 비즈니스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지 않았다. 비즈니스는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며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거울이라고 여겼다.
이런 반예술적 사고의 배경에는 그의 성장 환경과 시대적 변화, 개인적 경험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워홀은 슬로바키아 출신 이민자 가정의 아들로 펜실베이니아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출세를 꿈꿨고 자본주의 미국 사회에서 성공의 열쇠는 비즈니스라고 믿게 되었다. 워홀은 카네기 공과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에서 보그, 하퍼스 바자, 글래머 같은 유명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와 광고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20대 초반에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항상 상업미술가였다. 상업미술가로 시작했고 사업 미술가로 끝내고 싶다”는 그의 고백에서 드러나듯 미술과 광고, 예술과 비즈니스의 경계가 생각만큼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그는 미국이 성공과 부에 집착하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런 그의 생각이 집약된 대표작이 작품 1 ‘달러 사인’이다. 워홀이 작품 주제로 달러 지폐를 선택한 것은 도발이 아니었다. 예술은 돈을 초월한 고귀하고 순수한 활동이라는 전통적 미술관을 의도적으로 깨뜨리고자 했다. 그는 작품이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과정에서 이미 자본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달러 그림 시리즈 뒤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숨어 있다. 1960년대 초 워홀은 상업예술가로 성공을 거뒀지만 미술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업 방식을 선보이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을 그려야 할지 아이디어를 구했지만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 여성 지인이 그에게 결정적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게 뭔데요?”
이 질문은 워홀에게 큰 충격이자 계시로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가장 솔직하고 개인적인 욕망과 마주쳤다. 그것은 바로 돈이었다.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상업미술가로 성공한 워홀에게 돈은 생존 수단, 성공의 발판이자 동시에 가장 매혹적인 대상이었다. 이 대화를 계기로 그는 대중이 욕망하는 달러를 미술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자본주의의 가장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상징을 표현한 이 작품은 미술계가 돈에 대해 가졌던 위선을 폭로하고 미술과 상업의 관계를 공론장으로 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워홀이 달러 그림 연작을 팔아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나는 돈을 특별히 좋아한다. 돈을 버는 것은 예술”이라는 자신의 예술철학을 현실에서 이뤄 냈다. 워홀의 달러 그림은 오늘날 미술품이 투자 자산으로 여겨지고 상업 문화가 미술의 중요한 소재가 되는 현상을 낳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두 번째 명언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
이 말은 미술의 본질을 예술가의 감정이나 천재성에서 시스템과 반복, 공정으로 이동시키는 혁명적 선언이다.
“기계는 문제가 적다”는 그의 말처럼 미술에서 작가의 흔적인 감정과 개성을 배제하고 기계적인 과정과 시스템에 의해 작품을 생산하겠다는 의미였다. 워홀에게는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세상에 단 한 점뿐인’ 원본성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작품의 유일함과 원본성을 파괴해 극소수 재력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량 생산된 소비재처럼 대중이 소유하고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는 미술 창작을 산업 제조와 동일시한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그의 철학은 작업실 ‘팩토리’(Factory)에서 물리적으로 실현됐다. 1960년대 뉴욕에 문을 연 이곳은 이름 그대로 전통적 화실과 달리 공장처럼 운영됐다. 미술 공장에서 작품은 고독한 예술가의 창조 행위가 아닌, 여러 조수들이 협력하며 시스템과 과정에 의해 기계적 방식으로 대량 생산됐다.
워홀이 기계처럼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선택한 기술이 실크스크리닝이었다. 공업용 인쇄 기법인 실크스크린은 한 개의 판만 있으면 동일한 이미지를 수백 번이고 똑같이 찍어 낼 수 있었다. 붓질의 흔적이나 작가의 손맛이 남지 않는 기계적인 과정은 워홀이 추구했던 대량 생산된 소비재와 같은 미술을 구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었다.

작품 2 ‘코카콜라’는 워홀이 신문 광고에서 발견한 코카콜라병 이미지에 실크스크린 인쇄 기법을 활용해 팩토리에서 제작됐다. 그는 콜라병의 이미지에서 예술가의 개성이나 붓질의 흔적을 지우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상품처럼 획일적인 형태로 표현해 미술도 반복적으로 복제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워홀에게 코카콜라병은 누구나 소비할 수 있는 대중적 상품으로 미국 사회 평등과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그의 저서 ‘앤디 워홀의 철학’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이 나라의 위대한 점은 가장 부자와 가장 가난한 자가 본질적으로 똑같은 것을 구매하는 전통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길거리 부랑자가 마시는 것보다 더 좋은 코카콜라를 살 수는 없다. 모든 코카콜라는 똑같고, 모든 코카콜라는 좋다.” 이 작품은 2010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3536만 달러(약 385억원)에 낙찰됐다. 현대미술에서 민주성, 상품성, 평등성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워홀의 혁명이 사회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쳤는지가 미술 시장에서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다.
세 번째 명언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동안 유명해질 것이다.”
워홀의 저서에서 가져온 이 말에는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수십 년 앞서 꿰뚫어 본 놀라운 통찰이 담겨 있다. 과거에 명성은 왕족, 영웅, 배우, 가수, 운동선수처럼 극소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었다. 하지만 워홀은 TV와 잡지 같은 대중매체가 증가하면서 평범한 사람도 미디어의 조명을 받으면 유명인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예언의 핵심은 명성의 일시성에 있다.
워홀은 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명성은 순간적인 화제성에 의존하기에 생명력이 짧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가 말한 15분은 한 인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강렬하게 타오르다 금세 식어 버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대중은 사람의 본질이나 업적보다는 미디어가 포장하고 유통하는 이미지를 폭발적으로 소비하고, 관심이 식으면 새로운 이미지로 쉽게 옮겨 간다. 즉 명성은 빠르게 소비되는 상품이 되었다.
오늘날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와 같은 소셜미디어(SNS) 환경은 워홀의 예언을 현실로 만들었다. 하룻밤 사이에 세계적인 스타가 탄생하고, 며칠 뒤에는 잊혀지는 현상이 일상화됐다. 한순간 대중의 관심을 끌면 누구나 쉽게 자신의 콘텐츠로 유명해질 수 있지만, 그 명성은 워홀이 말한 15분짜리 스포트라이트처럼 짧고 강렬하게 끝나 버린다. 유명인이든, 비극적 사건이든 미디어를 통해 과도하게 반복·노출되면 본질적 의미는 사라지고 무감각한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작품 3 ‘매릴린 먼로’ 연작은 명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며, 소멸하는가에 관한 워홀의 예언이 작품으로 구현된 사례이다. 워홀이 매릴린을 선택한 의도는 그녀의 사적인 삶이나 내면을 탐구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미디어가 만들어 낸 섹시한 스타라는 매릴린의 이미지, 즉 상품에 주목했다. 그의 눈에 20세기 대중문화의 가장 강력한 아이콘인 매릴린은 코카콜라병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둘 다 대중이 욕망하고 소비하는, 아름답게 포장된 대량 생산의 상징일 뿐이었다.
워홀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매릴린의 얼굴을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제작했다. 미디어가 그녀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복제하고 대중에게 유포하는 방식을 미술로 가져온 것이다. 차가운 반복 과정에서 한 인간의 개성과 고유성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화려하지만 공허한 이미지뿐이다.
워홀은 매릴린의 얼굴을 통해 유명인의 이미지가 어떻게 대중에게 소비된 뒤 사라지는지를 보여 줬다. 워홀은 “내 그림과 내 영화, 나의 표면을 보라.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항상 내 묘비가 이름도 없이 텅 비어 있기를 바랐다. 무언가를 새긴다면 허상이라고 적었으면 좋겠다”고 유언처럼 말했다. 그는 작품의 표면 아래서 숨은 진실이나 심오한 의미를 찾으려는 전통적 예술관을 거부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대중이 보는 이미지, 즉 표면 자체였으며 그것이 현대사회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그는 예술가로서 자신을 실체 없는 이미지, 대중이 만들어 낸 허상으로 정의했다.
워홀은 실상이 아닌 허상을 쫓고 이미지와 표면이 지배하는 대중문화의 도래를 누구보다 먼저 예견하고 흐름을 선도했다. 이것이 바로 워홀이 단지 돈과 명성을 좇은 예술가를 넘어 현대미술의 기능과 예술가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한 혁명가로 미술사에 기록된 이유이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2025-07-2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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